로봇이 절대 대체할 수 없는 일


알고리즘 프로그램화할 수 있는 일자리는 곧 사라질 것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막대한 규모의 양적 완화와 정부 지출 확대에도 불구하고 좀처럼 고용이 회복되지 않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대표적인 복병 중 하나가 바로 기계화와 로봇기술의 발전이다.


이제 고용은 더 이상 경기순환의 문제로만 바라볼 수 없는 시대가 됐다. 브린욜프슨(Erik Brynjolfsson)과 매카피(Andrew McAfee)는 ‘제2의 기계시대(The Second Machine Age, 2014)’에서 자이모비치와 시우(Nir Jaimovich and Henry Siu)의 연구를 소개하며 과거 경기침체 이후 경기가 회복되면서 고용이 함께 회복되는 경향을 보였지만, 1990년대 이후 그런 경향이 사라져 버렸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과거에는 시장수요가 증가하면 기업은 생산량을 맞추기 위해 다시 고용을 증가시켰지만, 1990년대 이후에는 사람 대신 기계를 사용하는 경향이 강화됐기 때문이다.


고용 감소에 대한 위협은 저임금 단순 반복노동에 국한됐다. 하지만 최근에는 고임금을 받는 전문가의 숙련노동까지도 대상이 되고 있다. 정해진 구조의 데이터베이스(DB)와 알고리즘만 주어지면 업무를 수행할 수 있는 정도라면 로봇이 그 자리를 대체해 갈 가능성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 예를 들어 외과수술 가운데 패턴이 정형화된 일부 영역은 수술 로봇이 대체하고 있는 실정이다. 로봇의 위협은 인간의 모든 노동으로 확대되고 있다.


이같은 추세라면 앞으로 로봇을 관리하는 사람 정도만 살아남을 것 같다. 만일 로봇을 관리하는 사람의 노동까지도 로봇이 대체하게 되면 그야말로 인간이 설 자리는 완전히 사라질지도 모른다.


로봇이 아닌 지식이 지식을 대체하는 문제 우려가 현실이 되는 것일까. 아니면 기우에 불과한 것일까. 사실 20세기 전반에 활약했던 경제학자 슘페터(J. A. Schumpeter, 1883~1950)조차도 우려에 사로잡혔다. 그는 후기의 저서 ‘자본주의, 사회주의, 민주주의(Capitalism, Socialism, Democracy, 1942)’에서 자본주의를 성장시키는 원동력인 기업가의 혁신이 종국에는 자동화됨으로써 자본주의가 소멸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아직 1970년대 이후 진행된 공장자동화의 초기 모습조차도 보지 못한 상태였다. 1920년대 이후 진행된 포디즘과 대량생산 시스템, 그리고 인류 역사상 전례 없었던 대기업의 활약상만을 보았을 뿐이지만, 그런 예감이 들기에 충분했던 모양이다. 사실 이 문제를 자꾸 기계 또는 로봇이 인간을 대체하는 문제로만 봐서는 그 실체가 잘 보이지 않는다. 이 문제는 지식이 지식을 대체하는 관점으로 봐야 한다.


다시 말해 인간이 구사할 수 있는 온갖 종류의 지식 중에서 어떤 성격의 지식을 기계가 대체하느냐의 문제라는 것이다. 인간의 지식 중에는 하나의 절차로 기술할 수 있는 지식이 있고, 그렇게 할 수 없는 지식이 있다.


‘절차로 기술할 수 있는 지식’은 이렇다. 절차란 세계의 한 가지 상태에서 출발해 여러 연속적인 상태를 거쳐 마지막 한 가지 상태로 이행시킬 수 있는 일련의 정해진 지침 체계를 말한다. 가장 단순한 절차는 산술에서 나타난다. 예를 들어 두 자연수의 최대공약수를 구하는 절차인 유클리드 호제법은 하나의 절차다.


그 밖에도 연립방정식의 해를 구하는 절차, 주어진 문제에 대해 가장 가까운 해를 찾아가는 수치 최적화의 절차 등은 모두 프로그래밍 언어로 기술할 수 있다. 이런 절차를 우리는 알고리즘(algorithm)이라고 부른다.


기업의 업무 중에서도 이렇게 하나의 절차로 기술할 수 있는 업무가 상당히 많다. 어떤 규격의 부품이나 재료의 조합이 하나의 상태로 주어지면 그것들을 어떤 장치 안에서 어떻게 가공해 점진적으로 다음의 상태로 이행시킬 수 있느냐는 모두 절차로 기술할 수 있다.


재무제표를 만드는 절차는 매우 복잡해 보이지만, 사업의 모든 거래자료들이 최초에 하나의 상태로 주어지기만 하면, 그로부터 최종 재무제표를 산출하는 하나의 절차를 기술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특정한 고객들의 속성 데이터가 최초의 상태로 주어지면, 이로부터 판매 실현 가능성이 가장 높다고 판단되는 고객군을 추출하는 일도 하나의 절차로 분명히 기술할 수 있다.


이렇게 하나의 절차로 기술된 체계는 명확히 하나의 닫힌 체계(closed system)다.


이 절차에 최초의 상태가 하나 주어지기만 하면, 외부에서 어떤 절차가 추가되지 않아도 그 상태는 자신의 조합을 바꿔가며 스스로 최후의 상태에 도달할 수 있다. 이 절차를 ‘튜링 기계(Turing machine)’라고 불러도 좋을 것이다.


이렇게 최초의 상태와 그 상태를 처리하는 일련의 절차가 명확히 제공되기만 하면, 최후의 상태에 도달하는 과정에서 사람이 해야 할 일은 아무 것도 없다. 그리고 이런 체계는 외부를 배제한 상태에서 스스로 작동한다는 의미에서 ‘내부 체계(internal system)’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절차화 할 수 없는 지식


절차로 기술할 수 없는 지식도 있다. 앞에서 말한 최초의 상태 가운데에는 절차를 통해 생성해 낼 수 있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들이 있다. 가령, 현재 창고에 제품 재고가 100개 쌓여 있다. 이 재고량은 적당한 것인가. 연간 총판매 예상 대수의 10분의 1 이상이면 재고가 과다한 것으로 경영자가 임의로 기준을 정해줬다고 하자. 이 기준은 과연 절차를 통해서 나올 수 있는 것일까, 아니면 그렇지 못한 것일까. 경영자가 정한 10분의 1이라는 수치 자체는 절차를 통해 나올 수 있는 것처럼 보인다.

왜냐하면, 과거 유사 업종에 속한 기업들의 모든 재무 실적자료가 주어진 상태에서 ‘일정한 통계처리절차’에 의해 기업의 재무상황이 위험한 상태로 이어질 가능성이 가장 높은 재고비율을 하나 선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기에서 이 절차에 포함돼 있는 ‘유사 업종에 속한 기업들’의 범위를 확정하는 일, 또는 ‘일정한 통계처리절차’ 자체를 설계하는 일은 결코 절차를 통해서 수행할 수 없다. 이 일은 결국 사람이 해야 한다. 혹자는 이런 일조차도 사람이 개입하지 않고 절차를 통해 정할 수 있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어떤 절차라도 계속 거슬러 올라가면 어느 지점에서는 사람이 체계의 외부에서 해결해 줘야 할 매개변수와 봉착하게 돼 있다.내년도 사업 목표를 정하는 일은 절차가 해결해 줄 수 있을까. 금년도 예상 사업실적의 110%를 내년도 사업목표로 삼기로 했다면 이는 마치 절차가 해줄 수 있는 일처럼 보인다. 그렇다면 이 110%라는 숫자는 어떻게 도출된 것인가. 110%라는 숫자 조차도 절차로 도출할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게 도출된 목표치는 효과적으로 작동할 수도 없을 뿐더러 왜 그런 목표치가 설정됐는지에 대해 구성원이 보유하고 있는 의미와 전혀 부합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세계의 모든 기호(sign)로부터 의미(meaning)를 읽는 일과 그로부터 자신이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내는 일은 결코 절차를 통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결전을 앞두고 배가 12척 밖에 남지 않은 상황에서, 로봇은 데이터를 읽을 수는 있어도 의미를 읽어낼 수는 없다. 초대형 컴퓨터가 있어서 아군의 모든 웨어러블 기기로부터 입수한 신체와 정신상태의 수치자료, 동원 가능한 모든 장비의 성능자료, 심지어 기상예측 정보를 분석하는 절차를 가동한다 해도 탁월한 명장처럼 의미를 창조해낼 수는 없다.

예를 들어 1년 동안 준비한 프로젝트를 실패한 팀에 대한 평가를 내려야할 때, 단지 절차만을 의지할 수는 없다. 상사는 단순히 절차에 포함된 데이터 이상의 것을 주제로 팀의 성과를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 그 어떤 컴퓨터도 흔들리는 나뭇잎 하나를 주제로 사람이 읽고 공감할 만한, 시다운 시 한 편을 쓸 수는 없다. 천재의 창조와 발견, 경영자의 직관과 판단, 또는 사람 사이의 깊은 만남은 절차가 결코 해결할 수 없는 그 무엇이다.

미래에 아무리 사람과 비슷한 컴퓨터가 나온다 해도 의미의 창조를 통해 절차 자체를 재설계하는 일은 사람의 몫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 사람이 그 열쇠를 사용하지 않고 절차가 스스로 자신을 설계하도록 놓아둔다면, 그 기계는 잠시는 작동하겠지만 조만간 그 기능이 쓸모없는 것으로 전락할 것이다. 극단적인 경우에는 거대한 오작동과 예기치 않은 위기를 초래할 가능성이 높다. 우리는 절차에만 의존한 자동화 대출시스템이 얼마나 큰 재앙을 불러오는지를 2008년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에서 경험할 수 있었다.

인간의 욕구는 무한하다. 의식주의 모든 물질적 수단이 갖춰져 생존의 기본 욕구가 아무리 다 충족된다 해도, 그 이상의 다양성을 추구하는 욕구는 여전히 무한한 상태로 남아 있다. 다양성은 스스로 또 다른 다양성을 낳고, 세계의 한 상태는 갱신된 절차를 통해 또 다른 상태를 낳으면서 문화는
한 없이 풍부해질 것이다.

판을 바꿀 줄 아는 능력
경영자의 일 가운데 관리(administration) 업무는 로봇이 다 가져가면서 거의 사라지고, 오직 교육(education)과 혁신(innovation)의 일만이 남을 것이다. 교육과 혁신이 이뤄지는 외견상의 콘텐츠를 제조하는 일은 로봇이 하겠지만, 거기에 투입될 창조적인 의미와 제작의 방향성을 부여하는 일, 그리고 콘텐츠 생산절차를 재설계하고 매개변수를 재설정하는 일은 로봇의 외부에 존재하는 지식노동자들이 수행할 수밖에 없다. 인간의 모든 고용기회는 이런 무한한 욕구를 충족시키는 작업을 위해서라도 끝없이 유지될 것이다. 한때 슘페터가 우려했던 것처럼 혁신 자체가 자동화되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혁신의 정의 자체가 자동화와 모순이기 때문이다.

만약에 혁신이 자동화되었다면 그것은 이미 혁신이 아니라 관행(routine)이 되어 버리기 때문이다.로봇시대가 성큼 다가오면서 최근에는 프로그래밍이 필수 교양과목으로 떠오르고 있다. 이는 과거의 교육이 글자를 읽고 산수를 할 수 있는 능력에 초점을 뒀던 데서 진일보 한 것이다. 하지만 오늘날 글을 읽고 산수를 할 줄 아는 능력이 그다지 특별하지 않은 것처럼, 멀지 않은 미래에 프로그래밍 능력도 보편화 될 것이다.그럼 미래에는 과연 어떤 능력이 특별한 것으로 취급될까. 다시 말해서 어떤 능력이라야 넓은 고용 기회와 임금 프리미엄을 인정받을 수 있을까.

프로그래밍 언어 자체를 설계하고 생산할 줄 아는 능력, 세계로부터 의미를 창조적으로 읽고 생성해낼 수 있는 능력, 프로그램화된 절차와 관행을 언제든지 새롭게 바꾸어버릴 수 있는 능력, 기존의 모든 창조의 장르 구분을 언제든지 깨뜨리면서 새로운 방식으로 창작할 수 있는 상상력이 필요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인문학의 가능성도 재발견될 것이다. 이제 고용의 본질은 점점 경기순환의 문제로부터 멀어지고 있다. 고용이 궁극적으로 경제문제가 아니라 프리미엄을 인정받는 지식을 제공해 줄 수 있는 교육의 문제로 귀결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의 학교 교육은 시대의 변화에 뒤처져도 한참 뒤처져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


2015. 05. 22. (1156 vi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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