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상을 배워야 지지 않는다

협상은 인생의 동반자. 비즈니스뿐 아니라 모든 국면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어디서 무엇을 하든 가장 먼저 배워두시라.

협상을 '담판'과 혼동하는 경우가 많다. 즉, 제갈공명이나 오자서 같이 지혜가 많고 담이 큰 사람이 천하의 묘수를 가지고 절대 불가능할 것만 같아 보이는 난제를 해결해 내는 것이라는 그릇된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협상은 그렇게 심오한 것도 난해한 것도 아니다. 협상은 살면서 늘 벌어지는 일상사다.

비즈니스에서 협상은 모든 것이다

내가 직장생활을 하면서 받은 직무교육중 최고의 것을 선정하라면 단연코 김병국 변호사의 '협상 실무'를 꼽을 것이다. 교육 첫 시간에 교육 목적을 설명하면서, "협상은 모든 직무교육 가운데 가장 생산적이고, 가장 효과가 빠른 과목"이라고 강조하였다. 무슨 근거로 그럴까?

김병국 변호사의 설명에 따르면, 협상은 비즈니스 기술의 일종으로써, 아예 이기지 못할 싸움을 뒤집어서 이기자고 배우는 것이 아니다. 결론이 나는 모든 상황에서 5%씩 더 이기려고 배우는 것이다.

애걔~~ 고작 5%냐고? 여기서 말하는 5%는 일종의 '한계마진'이다. 1백만원 받을 물건을 팔면서 협상을 잘 하여 105만원을 받는다고 치자. 매출은 그대로 5%만 증가한 것이지만, 이익은? 제조업의 매출액 대비 영업이익률은 일반적으로 매우 낮다. 3~4%가 고작이다. 후하게 쳐서 5%라고 하자. 게다가 추가로 증가한 매출액 5만원에는 따라 늘어나는 매출원가가 없다. 협상에 나선 직원의 월급은 고정간접비이므로 매출 증가분이 그대로 이익이 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결론적으로 100만원 매출에 5만원 남을 장사가 협상을 잘 한 결과 105만원 매출에 10만원 이익을 내는 것이다. 매출액 신장률은 5%이지만 영업이익 신장률은 200%인 셈이다. 만약, 구매 담당자 역시 매입원가에서 5% 더 깎는다면? 영업이익은 300% 늘어나게 된다.

모든 직원들이 협상을 잘 배워서 평균적으로 판매할 때 5%를 더 받고, 구매할 때 5%를 더 깎을 수 있다면, 정말로 이런 수지맞는 교육이 세상에 어디 있겠는가? 기업 교육에서 가장 높은 우선순위는 협상론에 돌아가야 마땅하다.

비즈니스에서 협상은 실무자는 실무자대로 중요하고, 관리자는 관리자대로 중요하다. 협상의 기본도 갖추지 못한 임원이 협상 테이블에서 던진 한 마디에 수백억원을 날린 사례를 이미 소개한 바도 있다. (상무 같은 이대리, 대리 같은 김전무_링크)


협상은 여기서 둘 다에 속한다


비즈니스 뿐 아니라 개인적으로도 협상은 필수과목이다

진짜 치열했던 비즈니스 협상 경험은 나중에 풀기로 하고, 여기서는 실생활과 밀접한 내 경험을 두 가지 들어 본다.

협상은 정보에서 시작한다

신혼을 너무 가진 것 없이 시작한 우리 부부에게 매번 전셋집 옮기는 일은 그야말로 중대사였다. 외부 지원은 하나도 없었고, 전국적인 집값 상승을 따라 같이 올라가던 전세금은 가난한 우리 부부에게 턱없이 높았다. 2003년말 세번째 이사를 가는 집은 전세금 1억 1천만원에 나온 집이었고, 우리가 살던 집은 5천5백만원짜리였는데, 집사람이 한번 구경을 하더니 너무 맘에 들어 하면서 꼭 거기로 가자고 졸라댔다.

5천5백만원도 2천6백만원짜리에서 옮겨오면서 3천만원 가량을 대출받고 2년 내내 허리띠를 졸라 매서 겨우 빛을 다 갚아가는 시기였다. 5천5백만원을 다시 2배로 늘려 간다는 것은 너무 큰 무리였다.

그래도 하늘은 무심치 않았다. 부동산 중개 사무소의 실수로 그 집의 거래상황을 알게 된 것이다. 본래 주인이 집을 팔고 새 주인이 투자 차원으로 사 두는 집이어서, 전세 세입자가 꼭 필요했다. 그런데, 비수기인 11월이라 그런지 잔금일자가 다 되도록 전세계약이 체결되지 않고 있던 것이다. 부동산 중개사 사무소에서 그 잔금일자를 등 너머로 보고 난 속으로 웃었다.

일단 "집이 마음에 들지만 돈이 많이 부족하네요…" 라고 말하면서 명함을 건네고 나왔다. 그리고는 절대로 먼저 연락을 하지 않았다. 다급한 집주인을 대신해 부동산 중개업자가 여러 번 전화를 해왔다. 난 돈이 부족하다는 소리를 해가면서 차일피일 시간을 끌었다. 시기는 한겨울로 접어들고 있었고, 시간은 내 편이었다. 잔금 일자에 몰린 집주인은 전세금을 낮춰 부르기 시작했다. 5백만원씩 4번을 깎아서 결국 9천만원에 타결되었다.



집주인 – 세입자 관계라고 세입자가 항상 '을'인 것은 아니다

거기에 집주인에게 집수리 비용 분담도 요구했다. 그때 살고 있는 사람이 너무 집을 험악하게 써서 갓난 첫째 아이와 살기에는 어려움이 있어 보였기 때문이었다. 일단 중개사에게 부근 인테리어 가게에서 도배, 장판, 페인트칠 견적을 받아오라고 했다.

견적가 150만원중에 집주인이 100만원을 부담하기로 했다. 9천만원의 전세금을 건네고, 100만원을 현찰로 받은 다음, 견적을 낸 인테리어 가게 주인을 불렀다. 우리 아버지가 가구를 업으로 영욕의 한세월을 산(?) 덕분에 나도 인테리어는 좀 안다. 가게 주인에게 도배지와 장판의 품질을 높이고, 페인트칠 할 범위를 넓힌 다음 가격을 130만원으로 낮춰 결정했다.

자, 이 거래에서 내가 얻은 것은 얼마만큼일까? 현금 입출금에 주목하는 내 아내는 2천만원을 아꼈다고 좋아했지만, 그렇게까지는 아니다.

그 당시 내가 은행에서 대출받을 수 있는 이자율은 약 7%정도이므로 2년 전세 계약기간을 고려하면 여기서 (2천만*7%*2) 280만원을 절약했다. 월세인 경우 도배나 장판을 집주인이 부담하지만 전세에는 세입자가 부담하는 관행을 감안할 때, 집주인에게서 받은 100만원을 합하면 약 380만원을 아낀 것이다.

380만원이면 당시 내 한달 월급을 한참 넘는 금액이었다. 며칠 동안 잠깐씩 신경 좀 쓴 것 치고는 꽤 좋은 거래가 아닌가? 어떤 부업도 이만한 수익을 주지는 못할 것이다.


쫄지 말고 협상에 나서라

다음 사례는 별로 즐겁지만은 않은 기억이다.

2008년 연말연시를 보내려고 강원도 동해에 있는 처갓집에 들렀다. 12월 31일에 두타산 자락에 있는 아주 오래된 시골 목욕탕에 갔다. 그런데, 외할머니와 엄마를 따라 여탕에 들어갔던 4살배기 둘째 아들이 바가지로 물을 받아서 자기 몸에 부었다가 화상을 입었다.

가슴과 배 부위에 2도 화상을 입어 바로 커다란 물집이 잡히고, 아이는 자지러지고, 동네 병원에서 응급처치를 한 후, 남들은 새해 해돋이를 보러 내려오는 영동고속도로를 되짚어 서울로 올라와서 화상전문병원을 찾고… 한동안 정신이 없었다.

며칠 뒤 정신을 차려 사태 수습에 나섰다. 시골 목욕탕이 무슨 돈이 있어 손해배상을 해주겠냐 싶었지만, 그래도 일단 내용증명을 만들어 보냈다. 내용증명이라는 게 뭐 그리 어려운 것만은 아니다. 필자는 보통 대략 3단으로 나눠서 딱 한 페이지만 만들곤 한다. 왜냐면 내용증명은 페이지 수대로 우체국 수수료가 올라가니까.

첫 단은 모월 모시에 어디서 누가 뭐하다 이러저러한 사고가 발생했다는 일종의 '사실관계 확인'이다. 둘째 단에서는 그런 사실관계 속에서 상대방 측이 어떠한 잘못으로 법규나 관행을 어겨 내게 얼마만한 손해를 입혔는지를 구제적으로 밝히는 '손해발생 주장'이다. 이 때, 상세한 법규나 판례, 사례 등을 들 수 있으면 금상첨화다. 마지막 셋째 단에서는 적당한 구제책을 요구하고, 그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상대방이 앞으로 고생할 것을 각오해야 할 것이다라고 엄포를 하는 '청구와 경고'이다. 대학에서 전공도 아니고 부전공으로 배운 법학을 이렇게 누룽지까지 박박 긁어먹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그런데, 누가 알았겠는가? 세상이 좋아져서 그 조그마한 산골 목욕탕이 손해보험에 가입되어 있었던 모양이다. 회사로 손해사정인이 찾아왔다. 내가 손해배상으로 청구한 2백만원은 너무 과하니 5십만원만 받고 끝내자는 것이다.

내가 2백만원을 청구한 근거는 공중 목욕탕에서 뜨거운 물에 화상을 입었을 때 손해배상한 판례중 최고액을 조사한 것이다. 물론 유명기업 회장님이 특급호텔 사우나에서 화상을 입었을 때 받은, 일간지 사회면에 언급된 배상액(5억원인가?)은 빼고. 물론, 그 손해사정인도 나름 프로니까 근거없는 액수를 부른 것은 아니었다. 둘째 아이의 치료비가 대충 5십만원 정도였다.

내가 근거를 물었다. 손해사정인은 자기네 '자문 변호사'가 말하길, 보호자가 같은 목욕탕에 있었으니 '통상의 주의의무'를 다하지 않은 것이므로 그만하면 족하다고 했단다. 그 때 손해사정인의 얼굴에 슬쩍 비친 그 웃음, 마치 네가 뭘 안다고 까부냐는 것처럼 보이는 그 웃음이 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내가 물었다. 자녀분이 있느냐고. 그도 아들이 둘 있단다. 계속 물었다. 목욕탕에 애들을 데리고 가면 뛰어다니지 말라고 주의를 주냐고. 그가 그렇다고 답했다. 나도 그런다고 말했다. 그리고 다시 물었다. 그럼 애들이 바가지로 물을 부을 때마다 아빠가 바가지에 손을 넣어서 물 온도를 확인하냐고. 그렇지는 않다고 답했다. 나도 그렇게는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렇게 아무도 안 하는 것이 어떻게 '통상적'이죠?"

그는 아무 말이 없다가 조그만 목소리로 중얼거린다. "그래도 우리 '자문 변호사'가…" 그 지점에서 내가 잘라줬다. 그 변호사가 어디서 법을 공부했는지 모르지만, 나 같은 비법조인이랑 법정에서 맞붙어 국어공부 더 하고 싶으면 한번 해 보시라고…

돌아간 그 손해사정인이 전화로 1백만원으로 수정 제안했을 때, 난 아무 말도 않다가 조용히 말해줬다 "난 모범생이어서 여태 어떤 시험이고 90점 이하로 받아 본 적이 없다"고. 이 사건의 마지막 타결은? 180만원에서 끝났다.

나머지 20만원은? 이 건 해결을 두고 회사 동료들과 건 내기에서 이겨서 저녁을 얻어먹는 것으로 갈음했다. 상대가 보험회사라서, 또 실제 치료비가 50만원 정도라서 최대 100만원 이상은 보상받을 수 없으리라는 예측이 중론이라서 내 쪽에 건 동료들이 없었기 때문에 꽤 짭짤하게 얻어 먹었던 기억이 난다. 협상이 매일 부닥치는 업무인 종합상사에서도 그랬다.


위에 제시한 사례들을 보니 필자가 타고난 협상가인 것 같은가? 그렇지 않다. 협상은 무슨 '재능'이 아니다. 앞에서 얘기했듯 '기술'이다. 체계적으로 배우면 누구나 다 일정 수준에 도달할 수 있다. 물론, 눈치나 화술 등은 어느 정도 타고나는 면이 없는 것도 아니지만, 협상은 달변가나 모사꾼이 하는 특수한 일이 아니라 모든 일상생활과 비즈니스에서 매시간 벌어지는 보편적이고 일상적인 일이다.

다시 강조해 두지만, 협상은 배워야 한다. 기술적 요소가 많기 때문에 배우면 반드시 협상력이 는다. 협상에 관한 중요한 원칙이 많다. 위 사례를 통해 몇 가지만 살펴보자.

첫째, 입장에 관계없이 협상력은 중요하다.
세상을 '갑'과 '을'로만 인식하는 사람들은 항상 '갑'이 이기는 세상인데 뭣하러 협상 같은 것을 배우냐고 하지만, 협상은 이기고 지는 문제만이 아니기 때문에 누구나 배워야 할 과제다. 자신이 '을'이라고 생각하면 더욱 더 배울 필요성이 늘어나는 것이다.

첫 사례에서 필자는 집주인을 상대하는 세입자였고, 두번째 사례에서는 대형 손해보험사를 상대하는 개인 피해자였다. 약자이기 때문에 지레 포기하지 말고, 오히려 약자이기 때문에 배워야 한다고 생각을 바꿔야 한다.

둘째, 사전 조사가 대단히 중요하다.
협상 당사자간에 가지고 있는 정보가 불균형하면 정보를 많이 가진 쪽이 대부분 유리하다. 그래서 협상 테이블에 나서기 전에 가능한한 많은 정보를 수집해야 하는 것이다. 만약 첫번째 사례에서 내가 주택매매 계약서를 눈여겨 보지 않았더라면, 그래서 집주인이 가진 치명적 약점을 몰랐더라면 그러한 협상전략은 짤 수 없었을 것이다.

두번째 사례에서도 유사한 판례들을 미리 검색해 보지 않았다면 보험사에서 제시한 금액 50만원이 많은 것인지 적은 것인지 감도 잡지 못했을 것이다. 당시 내 직장동료 대부분이 치료비 실비인 50만원 이상을 받지 못할 것이라고 예측하면서 내기를 걸어왔다. 물론, 180만원을 받아내리라고 예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기 때문에 내기 결과는 내 완승이었지만.

셋째, 협상에서 최초에 제안하는 선은 일반적으로 높을수록 좋다.
Anchoring, 즉 먼저 제시된 기준이 이후 협상에서 basis로 작용하는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두번째 사례에서 미리 유사 판례를 검색하여 최고치를 알아내고 제시했기 때문에 그에 근사한 최종 협상결과를 도출할 수 있었던 것이다.

넷째, Halo Effect(후광효과)는 그 내용을 잘 알고 있는 사람 편이다.
두번째 사례에서 보험회사는 '변호사'라는 전문직이 가지는 권위와 일반인들에게 낯선 '통상의 주의의무'라는 법률 용어를 써가면서 협상에서 기세를 잡으려 했다. 나는 보험사에서 후광효과를 사용하리라는 것을 미리 예상하고 '무시'라는 역공을 준비했다. 무시당한 헛된 권위에게 돌아갈 것은 '당황' 뿐이다.

다섯째, 완승을 거두려고 하지 말아야 한다.
협상은 그 자체로 끝이 아닌 경우가 많다. 오히려 협상은 본격적인 거래의 시작이기도 하다. 따라서 협상 과정에서 상대방이 무시당했다거나, 결과적으로 당했다는 느낌을 받도록 하면 좋을 일이 없다. 따라서 일방적으로 너무 완벽한 승리에 집착하기 보다 모두에게 좋은 거래였다는 감정을 남기려고 노력해야 한다. 물론, 모든 협상에서 그럴 수는 없겠지만…

위 두 사례에서 내가 상대방을 엄청 몰아붙인 것 같지만, 실제로는 나름 퇴로를 열어두고 협상에 임했다. 집 수리비를 일부 부담한다든지, 마지막 순간에 손해배상액을 살짝 깎아준다든지 하면서 나도 협상 타결에 성의가 있다는 모습을 보여줬다.

매우 독특한 경우인 '채용 협상'을 생각해 보자. 협상이 타결되면 두 당사자는 고용관계에 들어서게 된다. 그런데도 입사자의 경력을 깎아내리는 것을 성과랍시고 좋아하는 인사담당자가 있는가 하면 (이걸로 채용 담당자 실적평가를 하는 쓰레기같은 대기업이 진짜 있다!), 자기 경력을 부풀리는 속임수를 쓰는 입사자도 있다. 협상이 좋게 끝나면 어차피 한 식구가 될 사이다.

2015. 08. 07. (1142 vi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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